
1.
사실 이 영화는 국내에 개봉 및 입소문이 나기 이전에 진짜 어쩌다가 알게되서 선량하지 못한(?) 의도로 보게 되었는데 당시에 진짜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선량하지 못한 의도란, 당시 어울리던 무리들이 영화, 애니 등을 좋아하던 무리였는데 서로 개똥같은 영화나 애니를 추천해서 보게 하고 괴로워하거나 빡쳐하는 모습을 즐기는 정겨운 풍습이 한창이었는데 당시 매우 희귀한 '동남아 영화'라는 타이틀이 보기도 전에 '이건 큰거다!' 라는 선입견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2.
그리고 사실상 영어 까막눈이라 없는 자막으로 영화 오프닝을 보면 왜 하는지 알 수 없는 나무타기를 비장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단 여기서 똥점 +1이 되었기에 편견을 강화시켰었다.
그런데 조금씩 의아(?)해지는게 나름 카메라 촬영을 잘했다.
그리고 액션 부분이 뭔가 좀 달랐다.
안전 장치 같은건 그냥 없고, 당시 이 정도 예산의 영화에 CG를 기대하는건 미친 짓이고 그렇다면 저게 다 진짜란 소린데...
아무튼 뭔가 묘한 기대감과 배우들 안전을 함께 걱정하며 영화를 보게 됐다.
3.
사실 초반에는 내용을 모르니 그냥 눈 'ㅡㅡ' 이렇게 되서 보다가 액션신에서는 'ㅇㅇ' 이렇게 변했다.
'와 진짜 후들겨 패네', '앵글로 가리고 그냥 헛치는게 아니네' 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왔다.
거기다가 액션 속도도 빠름.
이때부터는 적어도 액션 부분에서만큼은 이건 절대 개똥이 아니라 비료밭에 숨은 보석이다 싶어서 끝까지 다 봤다.
그리고 진짜 오랜만에 진심으로 주변 녀석들에게 "야 진짜 개쩌는 영화 발견했다. 액션 진짜 죽임" 이렇게 홍보를 해도 결국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어디 영환데?"
"태... 태국영화야"
"...(확신에 찬 분위기). 어, 그래 알았어."
"아니, 진짜 개쩐다고!!"
"그래, 진짜 개쩔겠지, 누가 추천하는 영환데 아무렴"
4.
10여명이 넘는 녀석들이 모두 똑같은 반응이었다.
아, 역시 사람이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면 안되는 거였나 하고 섣부른 행동을 반성하던 차에 뒤늦게 옹박에 대한 정보를 듣고 찾아 본 놈들이 "아 김팀장이 괜히 연막을 쳐서 명작을 더 늦게보게 됐다", "지만(?) 볼라고 이랬던 거였구나", "이걸 노렸던 거냐" 등등 후속 억까와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5.
당시에도 액션장면만 여러번 봤었지만 이제 제대로 된 한글 자막이 있는 버전으로 처음부터 다시 감상해봤다.
그리고 꽤나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게 됐다.
'난 이 영화에 대해 진짜 액션 빼곤 아무 것도 몰랐구나'
6.
몰랐던 거 리스트.
- 옹박이 불상 이름이었음.
- 연출이 초반과 자본이 많이 들어간 신은 괜찮은데 그게 아닌 장면에선 진짜 어마어마어마어마하게 조잡함. 이걸 다 배우들 액션으로 떼움.
- 어차피 기대도 안했지만 시나리오가 사실상 없음. 몇 있지도 않은 캐릭터들도 정리가 하나도 안되어 있음. 기본 설정도 오락가락함.
- 어렴풋이 느꼈던, 모든 것은 '액션신'에 맞춰진 영화였다는 걸 좀 더 디테일하게 느낌.
- 연출(카메라 연출)도 사실 잘 한게 아니라 그냥 토니 자가 진짜로 날라다녔던 결과였다는 걸 확인함.
- 태국 국뽕이 엄청남. 이와 상반되게 시골을 무슨 미개척지마냥 묘사하고 도시(서구화 문명)에 대해 엄청난 반감을 드러내는데 뭐 철학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고 그냥 마음에 안들었나 봄. 이 모든 건 '시나리오 따윈 어차피 상관없음'으로 귀결됨.
7.
다시 보니 사실상 액션에 대한 것도 이미 기준이 높아져버린 탓인지 당시의 충격은 전혀 없었다.
어찌보면 이 기준을 올린게 이 영화였기에 기분이 묘했다.
이해가 되면서 뭔가 모순인거 같기도 하고...
여튼 요새 나오는 개쓰레기 같은 것들과 비교하자면, 어쨌거나 앉은 자리에서 안끊고 쭈욱 봤으니 적어도 나한테는 이게 훨씬 나은 영화라는 거였다.
내가 매우 싫어하는 시나리오 따윈 애시당초 없는 영화인데도 말이다.
뭐, 개뿔도 없는게 있는 척하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8.
옛날 영화 다시보기의 시작으로 매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할 거 없으면(=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 옛날 영화나 꾸준히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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